거제도 바람의언덕 하면 으레 하얀 풍차와 탁 트인 바다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동선을안내하는 거의 모든 글이 그 풍차 앞에서 사진 한 장 남기는 걸 종착지로 삼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초보자나 호락호락한 대중의 시선일 뿐이다. 뻔한 풍경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입장료를 내고 들어선 그 숲길 이면의 암석대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조망 지점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는데,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은 평범한 풍경화일 뿐이고 바닥까지 내려가 파도와 신경전을 벌이는 갯바위 풍광이야말로 이 코스의 진짜 가치다.
코스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온통 잘 정돈된 데크 길이 이어진다. 편의를 위해 깔아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위 틈에 끼어든 소나무의 처절한 생명력에 무뎌지기 쉽다. 풍차를 배경으로 셔터를 누르는 행위는 동선이 불편한 이 구역을 관광지로 포장하기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춘 틀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차라리 데크를 벗어나 안전선 안쪽의 거친 암반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라. 검은 바위를 때리는 파도의 거친 결이 맹목적으로 그려지는 평화로운 해변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질감을 던져준다. 그 거친 생김새가 계획된 관광지의 인위성을 확실하게 부숴버린다.
물론 갯바위로 내려가는 길은 결코 친절하지 않다. 엉성하게 깎인 돌계단의 경사가 제법 가파르고 발밑엔 미끄러운 이끼가 잔뜩 끼어 있다. 어설프게 접근하려다간 옷에 흙범벅이 되는 걸 감수해야 한다. 여기서 평가 기준을 둔다면 접근성에는 낮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각적 충격과 공간이 주는 압도감을 놓고 보면 이 점수를 뒤집기에 충분하다. 파도가 치솟을 때 바위 위로 넘어오는 물보라를 직시하는 잔혹함이나 전體를 때리는 거센 바닷바람의 묵직함은 윗동네의 평화로운 전망대에서는 절대 체감할 수 없는 물리적 감각이다.
굳이 남들이 다니는 정해진 길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억지스럽게 꾸며둔 휴게 공간에서 컵라면 뚜껑을 따기보다 갯바위 끝자락에 서서 옷깃을 흩날리는 회색빛 바닷바람을 맞는 편이 이 코스를 찾은 진짜 이유를 충족하는 길이다. 바람의언덕이라는 이름값을 제대로 하려면 바람을 등지고 바다를 통째로 삼킬 듯 마주해야지 먼 발치서 그저 구경하는 눈빛은 어울리지 않다. 멋 부린 사진 한 장 남기려는 속 좁은 목적은 거제도의 거친 바다 앞에서 최하위 점수를 받아 마땅하다.